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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늙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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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3-30 15:36 조회1,3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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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부주차장에서 고령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생각 없이 앉은 자리가 30대 여성의 옆자리였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그 여성이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이유없는 부끄러움과 함께 열패감이 밀려왔다. 경상도사투리로 '꼬방시다' 싶기도 했다. 젊은 제자들의 환대에 눈이 멀어 제 꼴을 못 본 탓이었다.

초등학교 여자동창생의 자글자글한 주름살에는 놀라면서, 내 머리카락의 서리 내림을 알지 못한 게 죄라면 죄였다. KTX를 이용할 때는 '이왕이면 좋은 사람과'를 꿈꾸며 일부러 1인석보다는 2인석을 원한 적도 있었는데. "쉰부터 다시 산다는데 사는 것이 이리 어렵다"는 김지하 시인의 토로가 실감이 났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라"는 선배의 말은 "말은 삼가고 외로움을 가까이 하라"는 의미도 함께하는 거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외로움과 마주하는 거구나. 한때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며 외로움을 장식처럼 내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견뎌야 하고 풀어야 할 절박함으로다가온다.

일단은, 아내가 은근슬쩍 주문한 것부터 눈치껏 하기로 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놈을 위해서도 가능한한 집에는 늦게 귀가할 것, 바깥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 농사일은 혼자서 해결할 것, '할아버지의 유산,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아들을 엄친아로 만든다는 말을 귓등으로 듣지 말 것 등이 내가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결과는? 갈수록 태산이다. "괜히 했어. 괜히 했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마누라는 아들놈과 짝짜꿍이 된 것을.

이왕 엎지른 물이라 포기도 못하지만, 또다른 생활의 즐거움도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백발노인처럼 근사하지는 않겠지만, 나름의 자족이 있는 농촌생활도 의지를 북돋운다.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말 걸기, 경로당의 어르신에게 광고 라이터 선물하기, 갓 담근 된장독에 뿌려진 별빛 내려 보기.

하루가 금방이다. 진즉에 농촌에서 살걸 싶다.

한상덕(대경대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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