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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속 동성애(대구문화 07월호 문화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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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7-08 06:32 조회2,3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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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호주에서 경험한 일이다. 학과교류를 위해 방문한 자매대학의 교수가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먼저 소개하는 거였다. “분명 다른 소개할만한 것들이 많을 텐데...”라는 당혹감과 함께 “아무리 동성애자의 날을 정하여 축제를 하는 나라지만 초면에 밝히는 게 예의인가?”라는 의문이 보태어졌다. “흔히 하는 말로 커밍아웃이라도 하는 건가. 인종차별이 심하다더니 황색인종이기에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닌가.”상상력에 더하여 열등감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 예정대로 저녁만찬이 이어졌고 상상은 식욕까지 감퇴시켰다. 메뉴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거북함이었고 그가 건네는 와인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크게 환영했을 옆자리의 동석이 불편하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갔다. 낯선 나라에서 혼자라는 이유 때문인가. 그동안 나는 틈이 나면 그와 어울렸다. 밤이 늦도록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도 함께 불렀다. 초등학교 통지표에서부터 지적되어온 내 산만함과 그의 세심함이 어울려 맡은 일도 척척 잘 진행되어갔다. 참으로 어울리는 명콤비였다.
동성애가 한국사회의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개봉된 첫 번째 영화는 ‘내일로 흐르는 강’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이 영화는 1996년도에 제작된 영화로 남자간의 육체적 사랑표현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기껏 두 사람 입 사이에 주먹을 넣어 입을 맞추는 게 고작이었지만 상영과 동시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동성애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화제 거리였다.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영화 ‘서양골 동양과자점 앤티크’가 발표됐다. 이 영화는  앞선 ‘내일로 흐르는 강’에 비하면 더 노골적이었다. “넌 여자를 좋아해? 난 남자를 좋아해.”라는 식으로 당당하고 직접적이었다. 외화 또한 동성애를 자주 다루어왔었다. ‘크라잉 게임’이나 ‘해피투게더’같은 작품을 비롯해 ‘브로크 백 마운틴’같은 작품이 대표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소비자의 자세부터가 다르다. 영화는 관객이 선택한 후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장시간동안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에 드라마는 일상에서 시청이 이루어진다. 자신이 선택할 수도 있지만 무심히 눈을 주다가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다. 영화가 판타지에 좀 더 가까이 있다면 드라마는 리얼리티 쪽이다. 영화는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도 크게 앞서갈 수도 있지만 드라마는 사회변동에 따른 대중의 사고와 행동에 주목한다. 방귀뀌는 묘사가 TV에서는 자연스럽지만 영화에서는 코끼리가 방안에서 놀아야 제격이다. TV는 친숙한 이미지의 배우가 선호되고 영화는 깎아놓은 조각남이 캐스팅 1순위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SBS-TV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와 기존의 영화에서 다룬 동성애는 달리 보아야한다. 물론 이전에도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에 이어 ‘개인의 취향’에서 동성애가 등장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자인줄 알았던 고은찬은 사실은 여자였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은 남자로 위장한 여자였고 ‘개인의 취향’에서 게이인줄 알았던 전진호는 진짜 게이가 아니었다.
작가 김수현은 “경쟁하듯 더더더 드라마보다는 편안하고 기분 좋게 봐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작가의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있다. 바람을 전공처럼 삼다가 늙고 병들어 돌아온 남편에 대한 원망과 측은함을 함께 드러내는 아내. 땅을 밟고 살지만 아름다움이 분처럼 묻어나는 재혼한 중년부부의 사랑. 지지리 못난 동생과 완벽에 가까운 형의 티격태격. 아버지가 다르지만 쿨한 가족애. 그런데도 드라마는 허구로 보이지 않는다. 다큐이고 생활이다. 흉내 내고 싶고 따라하게 만드는 이상적 가족상이다. 하지만 동성애를 가족에게 드러내고 가족이 이해하고...집을 방문한 아들의 남자친구를 반갑게 맞이하고...남자친구와 너무나 행복해하는 아들을 향해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나면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경구가 머릿속을 붕붕 날아다니지만 혼란스럽다.
대중문화시장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선택하는 이유는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다. 첫 번째는 소재의 고갈이다.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삼각․사각의 멜로, 신파조에 이은 막장드라마로는 한계에 부딪힌 거다. 하루가 다르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중의 입맛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치고 빠지기’식의 매체이용을 위한 도구로 적합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란만한 홍보효과는 많지 않다. 특히 마이너에 대한 배려는 사회공동선을 추구해야한다는 과도한 의무감과 맞물려 필요이상으로 매체를 들뜨게 만든다. 
다음으로는 세상의 변화다. 우리 사회도 이제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공론화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그들이기에 양지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웃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그들을 발가벗겨 광장으로 내몰아 돌팔매질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런 대중의 마음이 일부 작용하기에 영상콘텐츠로 과감히 이용하는 거다. 
마지막으로는 문화소비의 절대강자인 여성을 겨냥한 결과다. 문화시장의 강력한 소비유인책으로 성적욕구만한 것은 없다. 흔히 알고 있는 투쟁이나 코미디는 한 수 밑이다. 과거 성적욕구의 소비주체는 남성이었다. 여성간의 동성애조차 성 상품으로 취급됐었다. 남성의 볼거리를 위한 것이었고 에로틱한 성적상상을 위한 도구로 받아들여졌었다. 대신에 이제는 여성이 중심이다. 꽃미남에 이어 짐승남이 탄생한 것은 그런 배경이 있어서다. 드라마 ‘추노’의 시청률 상승에 결정적 수훈은 잘생긴 젊은 배우의 벌거벗은 몸매라지 않던가. 드라마 ‘아름다운 인생‘에서 잘생긴 전문직 두 남성의 동성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과거 여성이 성 상품화의 소재가 되었다면 이제는 남성이 동원되고 있는 거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논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극단적인 반응은 자제해야한다. 자칫하면 계몽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와 동일시를 원하는 이들은 주인공과 유사한 행위를 유행처럼 모방할 수도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그때 그 호주인과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김수현 작가가 자주 강조하는 말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사이다.
글쓴이 한상덕 (대경대학 연극영화방송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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